모이는 방
2014년 남포동, 객실 스물다섯 개짜리 숙소를 우연히 시작. 비수기마다 비던 방을 채울 방법을 찾다가, 빈 방을 메우려던 일이 사람을 채우는 10년으로 이어졌다.
공간 100 · #03 그레이 (Kim Hyunseung) · 2026년 6월
나는 2014년에 남포동에서 숙소 하나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객실 스물다섯 개짜리 작은 숙소였다. 간판은 호텔이였지만 도미토리만 없는 게스트하우스, 싱글·더블·트윈·패밀리 네 타입에 객실마다 샤워실과 화장실을 따로 갖춘 비즈니스호텔처럼 보이고 싶어 한 곳이었다.
시작은 서류였다. 영업신고서를 들고 구청을 몇 번이나 드나들었다. 어떤 칸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무슨 도면이 더 필요한지 하나도 몰라서 매번 반려되고 다시 갔다. 그 과정을 통과하고 나서야 진짜 일이 시작됐다. 예약 시스템을 붙이고, 직원을 구하고, 청소 동선을 짜고, 수건은 몇 장을 돌려야 하는지 계산하고, 손님 모일 작은 이벤트를 만들었다. 침대를 들여놓는다고 숙소가 되는 게 아니었다. 그 침대에 사람이 누울 때까지, 손이 수백 번은 갔다.
공용 공간이 없는 것도 처음부터 문제였다. 객실은 스물다섯 갠데 사람들이 같이 머물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옥상을 끌어다 썼다. 날 좋으면 루프탑이 우리 라운지였다. 짐 맡길 데나 회의할 데가 필요하면 옆 건물 수제맥주집에 부탁했다. 손님 짐을 잠깐 맡아주고, 낮에 비는 그 집 한쪽을 빌려 회의실처럼 썼다. 그때는 그냥 급해서 한 일이었다. 없는 걸 옆에서 빌려 메우는 게 일상이라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그렇게 다 세우고 나니,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숙박업엔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다. 여름 지나고 축제 끝나면 방이 빈다. 빈 방은 가만히 둬도 돈을 먹는다. 침구는 똑같이 관리해야 하고, 불은 켜둬야 하고, 직원 월급은 그대로 나간다. 손님 없는 객실이 매일 조용히 돈을 까먹었다. 아침에 예약 현황 열어서 빈칸이 줄줄이 늘어선 걸 보는 게 비수기의 일과였다. 채워야 했다. 그 무렵 머릿속을 안 떠나던 '이 빈 방을 뭘로 채우지.'
그래서 빈 객실 채울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단체 손님, 행사, 제휴 방을 한 번에 채울 수 있는 거면 뭐든 봤다. 머릿속엔 늘 객실 수가 떠다녔다. 몇 명이 며칠 묵으면 이 비수기가 메워지나. 나는 사람을 '몇 박 몇 명'으로 환산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다 서울에서 열리던 해커톤을 알게 됐다. 주말 이틀 동안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뭔가를 만들어내는 행사였다. 멀리서 온 참가자들은 잘 데가 필요했다. 생각은 단순했다. 저런 걸 부산에서 열면 그 사람들이 우리 빈 방을 채워주겠구나. 비수기의 답을 드디어 찾은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내가 채운 건 객실이 아니었다.
그들은 보통 투숙객처럼 굴지 않았다. 체크인하고 짐만 던져두곤 다시 내려와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낮엔 옆 맥주집에 빌린 회의실에 모여 떠들고, 밤 깊으면 옥상에 둘러앉아 서로 아이디어를 사정없이 까다가도 막판엔 같이 밤을 샜다. 방값 받으려고 들인 사람들이 정작 방엔 거의 없었다. 그들에게 우리 숙소는 자는 데가 아니라 모이는 데였다. 비어 있던 옥상이, 객실보다 먼저 찼다.
행사 끝나고 체크아웃한 뒤에도 연락은 안 끊겼다. 누구는 또 부산 오겠다고 했고, 누구는 자기가 아는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방값 받자고 들인 사람들이었는데, 남은 건 방값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객실은 며칠 뒤 다시 비었다. 사람은 안 비더라.
그 무렵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광안리에서 호스텔 하던 분, 중앙동에서 게스트하우스 하던 분들과 자주 만났다. 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다 빈 방을 어떻게 채우나.
그 관계가 뭔지는 방이 빌 때가 아니라 넘칠 때 알았다. 어느 밤, 자정 다 돼서 손님이 예약 확인서를 들고 프런트에 섰다. 근데 그 방엔 이미 다른 손님이 묵고 있었다. 온라인이랑 전화로 동시에 들어온 예약이 겹친 거다. 오버부킹이었다. 갓 시작한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손님 앞에서 시스템을 탓할 수도, 없는 방을 만들 수도 없었다.
결국 광안리, 중앙동에 빈방이 있냐고 전화를 돌렸다. 마침 한쪽에 방이 하나 있어서, 손님한테 사정 설명하고 택시 잡아 그쪽으로 모셨다. 다음 날 아침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한꺼번에 안고 찾아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이번엔 그쪽 방이 넘쳐서 나한테 손님을 보냈다. 그렇게 서로 넘친 방을 받아주면서, 숙소 한 채로는 못 버틸 밤들을 같이 넘겼다. 내 빈 방 메워준 것도, 내 넘친 방 받아준 것도 같은 사람들이었다.
어떤 날은 누구네 가게에 둘러앉아서, 어떤 날은 늦은 밤 메시지로, 어떤 손님이 왔고 뭐가 통했고 뭐가 헛수고였는지를 나눴다. 거기서 제일 많이 배웠다. 빈 방 채우는 법을 알려준 건 책도 매뉴얼도 아니고,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고민 하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빈 공간 채울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그 방법마저 사람한테서 나왔다. 답은 처음부터 객실 수 안에 없었다.
그렇게 빈 객실을 채우려다, 어느새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채우는 일로 들어서 있었다. 그 일은 숙소를 한참 넘어, 이후 10년 동안 사람을 모으고 잇는 일로 이어졌다. 그 길에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좋은 인연들을 만났다.
어떤 공간은 일부러 비워두어 사람을 부른다. 또 어떤 공간은 비어버린 자리를 메우려다 사람을 발견한다. 결국 채워야 하는 건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었다.